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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투올슬렝(S-21) 대학살, 영화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

 







 

영화 관련 카메라 사진

 
 
 

 

 

 

 
 
 

1.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 줄거리.

 
 
 
 
 
 

수도 프놈펜에 사는
주인공 소녀 '로웅'과
가족 그리고 주민들은

 

어느 날
새로운 정부인
‘캄푸치아’ 정권에 의해
도시에서 지방의
농장집단에 쫓겨나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시 시작합니다.
 

‘로웅’ 주위의 사람들은
하나둘 죽어나기 시작하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동생까지
행방을 알 수 없어집니다.
 

나중에는
어린 소녀 로웅과
어린아이들이
사상교육과 소년병 훈련을 받기
시작하는 등
 

소녀 ‘로웅’를 통해
최악의 지도자
'폴포트'로 인해
캄보디아 국민들의 고통받는
실상을 그린 영화입니다.
 
 
 
 
 
 
 

2. 영화를 본 후 느낀 점과 추천이유.

 
 
 
 







요약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크메르루주의 공포정치.
 
다섯 살
캄보디아 소녀 '로웅'과
가족들 그리고 도시사람들이
한순간에 집을 잃고 낯선 곳으로 
강제 추방당하게 된다.
 
무섭고도 험난한 곳
'로웅'과 가족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쉽지 않다.
 
'로웅'은
죽음의 한가운데를
맨발로 헤쳐간 살아남기 위한
고난의 여정, 생존자의 실제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이

한때
동남아 파리로 불릴 만큼 성대한 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과 과정을 어린아이 ‘로웅’의
시선으로 보니 더 마음이 아파지는 것
같습니다.



같은 옷, 같은 머리,
같은 집, 같은 노동…



국민들은
가혹한 노동과
그리고 아무리 일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기에

집단농장 내에
영양실조, 과로, 기아로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975년 한 해 동안
도시 이주민의 1/3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캄포티아의 독재자 폴포트는
척살 대상 1순위를
지식인으로 뽑아
교사, 공무원, 경찰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지식인의 색출 방법마저
황당했습니다…


첫 번째, 안경을 쓴 사람.
두 번째, 피부가 곱고 밝은 사람.
세 번째,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


끔찍한 사실은
색출한 사람뿐만 아니라
3대째 온 가족을 살해하는 등
악행을 저지릅니다.


‘폴포트’ 자신을 제외한
지식인은 나라를 망치는
주범이라 주장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크메르루주 간부들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학을 다녀온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그의 악행은 
계속되었습니다.
 

독재자 ‘폴포트’의
무능함과 멍청함으로
인해 파국으로 가는 것이
너무나 잘 느껴졌고


공산주의에서 극단적으로
나라를 휘어잡으면
얼마나 무너지는지 보여주며,
다시 한번 지도자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이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우선 넷플릭스를 보신다면
편하게 찾아보실 수 있고

영화자체를
너무 잘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을 몰랐던 분들도
접하게 돼서 알게 되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3. 영화 배경 

 
 
 
 
 
 
'폴 포트'
극단적인 공산주의
단체의 지도자였으며
킬링 피드를 주도한
동남아 역사상 최악의
학살자입니다.

 

폴포트의 20대 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거기에서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고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사상에 매료돼
캄보디아를 공산화
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1953년 폴 포트는 귀환했습니다.
 
 
시아누크 왕이 집권하던 1953년. 
 
 
공산당에 입당한 폴 포트는
1960년대 
동지들과 공산당 내
인민해방군 조직했는데
 
이것이
'크메르루주'입니다.
 
 
크메르루주란 
 
1960년대에
결성된 캄푸치아 공산당으로
무장투쟁으로 공산주의
혁명을 이루려 하였습니다.
 
 
론놀 장군의 쿠데타 이후
(지원국 미국)
 
시아누크 왕이 쫓겨나가면서
 
폴포트에게 기회가 옵니다.
 
 
중국 망명해 있던 
시아누크 왕
정권 잡기 위해
 
마침공산당에서
크메르루주와 연합하라고
하였고 
 
그 결과 많은 국민들이 
시아누크 왕을 따라
연합 크메르루주에
가입을 희망하였으며 
 
이는 
수년간 론 놀 정부와 
크메르루주 연합군의 
캄보디아 내전을 벌입니다.
 
 
서로 싸워서 얻어낸 지역과 
보급로를 지키기 위해서
양측에서 수백만 개의 지뢰가
매설 지도도 없이 뿌려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계속되던 내전 중
 
론 놀의 지원국 미국이
인도 차이나에서 철수(1973년)
하게 되면서
 
 
폴 포트는 최고 권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 내전으로
수십만 명의 피해가
엄청났다고 합니다.
 
 
1975년 4월 17일 
크메르루주 프놈펜 입성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내전이 끝났다는 소식에
크메르루주를 환영했습니다.
 
이들이 세운 나라는 
민주 캄푸치아(1975~1979년까지)
이것은 크메르루주가 설립한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이때 폭격으로 살 곳을 잃은
국민들이 프놈펜을 비롯한
대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서 난민들로 가득하고 
식량이 부족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초 대약진 운동을
실시하게 됩니다.
(대약진 운동이란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주도한 
농공업 증산 운동->대 실패.)
 
폴포트는 극단적인 
공산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폴포트가
프놈펜을 장악 후 제일 먼저
한일은
 
프놈펜에 사는 시민들을 
쫓아낸 것입니다.
 
그 이유는 
도시사람들을
자본주의에 물들어서 
사회를 망치는 국민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미국의 폭격이 올 것이라
거짓말로 시민들을 속여
 
환자, 노인,
아이, 임산부 할 것 없이 
 
농촌으로 
강제 이주를 시켰습니다.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처형했습니다.
 
그렇게
동남아 파리로 불린 도시는
하루아침에 유령도시로 되고 맙니다.
 
 
이를 배경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각종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수백 년 전 캄보디아
영토를 되찾기 위해
베트남을 침공까지 하면서
 
베트남과 크메르루주의 전쟁
또한 발발하게 됩니다.
 
 
미국과 중국의 몰래 지원을
받던 크메르루주와 친베트남 정권의 내전이
벌어지면서
 
또한 국민들이 고통받습니다.
 
미국은 크메르루주 만을
정식 정부로 인정했고
 
친베트남 정권인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은
철저히 무시당했습니다.
 
이 와중에
미국은 베트남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여론전을
펼쳤고
 
이에 여론을 뒤집기 위해
크메르루주가 저지른 
대학살을 외국에 홍보했습니다.
 
베트남에 의해 박물관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강제 수용소 투올 슬렝'입니다.
 
그리고 캄보디아 전역에 있는
킬링 피드를 발굴했습니다.
 
그렇게 베트남의 적극적인
유골 발굴과 언론 홍보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제 여론은 계속 좋지 않아
 
결국
캄보디아 침공 10년 만인
1989년 9월 베트남군이 
철수하게 됩니다.
 
그리고 UN에서 캄보디아 내전이
끝나게 도왔지만 쉽지 않았고
 
크메르루주의 무장 해제를 요청했습니다.
 
이를 거부하다가
1993년 UN
적극적 개입으로 이루어진
총선으로
 
캄보디아 입헌군주제가 탄생했고
시아누크가 국왕으로 복귀하였습니다.
 
 
하지만 폴포트는 
이를 인정하지 않아 
다시 내전이 시작되었고
 
하지만 오래된 내전으로
크메르루주는 분열하기 시작
하여
 
결국에는
부하들에게 체포되어 인민재판을 받게 되었고
종신형을 받게 됩니다.
 
 
 
 
 
 

 

 
 

4. 투올슬렝(S-21) 대학살 박물관에 대해.

 
 
 
 
 
 
 
 
수도 프놈펜 시내에 위치한
투올 슬랭(Tuol Sleng).
 
1975년~1979년까지 수도 프놈펜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강제 수용소로 개조하여 운영한 것입니다.
 
당시 실상을 알리는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고민과 도구들
그리고 희생자들의 유골등
 
 
희생자들의 사진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캄보디아 곳곳에
강제 수용소 건설을 했는데
그 숫자만 120여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중 가장 악령 높은 수용소가 투올 슬랭 (S-21) 수용소 
라고 합니다.